(시사캐스트, SISACAST=황최현주 기자) “소주는 어떤 음식과 마셔도 거부감이 없어. 오히려 음식의 맛을 더 돋워주는 것 같아.”
한국을 주무대로 1인 방송을 하고있는 한 외국인이 표한 소감 중 하나이다. 이 외국인의 국적은 일본이나, 일본음식보다 한국음식이 자신과 잘 맞다는 말을 습관처럼 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주로 한국음식으로 ‘술방(술먹방)’ 컨텐츠를 운영하고 있는 이 일본인은 어떤 식당을 가든 참이슬을 빼놓지 않고 자신의 식탁에 올려두고 있다.
영화나 드라마, 음악 등 K-컨텐츠가 세계를 열광케하면서 자연스럽게 한국의 먹거리에 관심을 가지게 된 외국인들이 늘었다. 덕분에 술 역시도 빼놓을 수 없는 먹거리 상품이 됐다. 국내 무수한 주류회사들이 소주를 해외로 수출하고 있지만, 하이트진로만큼 매출이나 점유율이 높지 않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유가 무엇일까? 바로 100년의 시간을 통해 완성된 경험치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건설사‧백화점까지 보유했던 진로그룹… 국내 최초 캔맥주 생산‧수출 조선 맥주
소주(燒酒)는 불에 사른, 불에 태운 술이라는 의미이다. 증류주의 한 품종이기도 한 소주는 지역별로 아락주, 아랑주로 불려지기도 하는데, 아랍어에서 파생됐다는 문헌 기록이 존재하고 있다. 불을 붙이면 불이 난다하여 화주(火酒), 한 방울씩 모아서 만들어진다 하여 노주(露酒), 땀방울과 같다 하여 한주(汗酒)라고 불려지기도 했다.
한국의 소주는 고려시대 말기 충렬왕 재위 당시 원나라 황제 세조 쿠빌라이 칸이 일본 원정을 하기 위해 고려로 들여온 술로 기록돼 있으며, 조선 태조 이성계가 주로 마셨던 술로 알려져 있다. 이 시기 소주는 현재 만들어지는 것보다 도수가 강했고, 양반 신분이 아니면 흔히 마실 수 없었던 술이었다고 한다.
양반들의 전유물로 인식됐던 소주는 일제강점기 당시 설립된 진로그룹의 전신 ‘진천양조상회’가 대중화 포문을 열었다. 진천양조상회는 보통학교 교사 출신 우천(友泉) 장학엽 창업주가 평안남도 용강군에 설립했다. 소주는 역사적으로 평안도와 개성 일대에서 많이 생산되던 술로 전해지고 있는데, 이곳에서는 소주를 '아락주'라고 불렀다.
단독 경영으로 회사를 이끌어왔던 장학엽 창업주는 6.25 전쟁이 터지면서 월남하여 부산에 정착해 동화양조, 구포양조를 거쳐 1953년 서울로 상경해 ‘서광주조’로 재출범했다. 이후 1961년 사광산업을 세워 사업을 확장해 나갔고, 1966년 ‘진로주조’로 사명을 변명해 중앙발효공업 인수, 수유유리공업, 도원관광, 성미쥬리아(화장품) 등을 인수‧설립해 사업 저변에 성공하면서 명실상부 그룹으로 입지를 다지는데 성공했다.
사업 다각화에 성공한 진로주조는 장학엽 회장의 조카 장익용 사장에게 경영권이 맡겨졌을 당시 경영권 분쟁이 있기도 했다. 일선에서 물러난 장학엽 회장은 쉰 살의 다소 늦은 나이에 아들 장진호 사장을 낳았지만, 그가 물러날 당시 장진호 사장은 스물세 살 약관의 나이였던 탓에 회사를 이끌기 충분치 않다는 의견이 있었다.
10년 후 장진호 사장은 장익용 사장에게 경영권을 달라 요구하였지만, 장 사장이 거절했고, 이 때문에 장진호 사장은 우호지분을 끌어모으는 것으로 경영권 장악에 성공했다.
장진호 사장은 회장으로 취임했으며 진로문화재단과 진로건설을 설립하고 통조림업체 펭귄 인수 등 젊은 패기를 바탕으로 주류와 관계없는 업종까지 사업확장을 하면서 명실상부 진로는 그룹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재계순위 24위까지 올라가며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보였다.
빠르게 성장하면 내려오는 것도 빨랐다. 1997년 IMF 사태가 불거지면서 부채가 갈수록 늘어나 진로그룹은 결국 부도를 맞고 말았다. 계열사들을 서서히 정리해야만 했음에도 모기업 진로만큼은 사수하고자 했던 장진호 회장은 2003년 법정관리를 거쳐 2005년 하이트맥주에 진로를 매각했다.
하이트맥주 역시도 진로소주 만큼이나 무시할 수 없는 역사를 보유하고 있다. 386세대 이상에게는 ‘크라운맥주’로 잘 알려진 하이트맥주는 1933년 주주들로 구성된 대일본 맥주가 경기도 시흥군 영등포읍에서 조선맥주(주)로부터 시작된다. 당시 이곳은 일본 아사히 맥주와 삿포로 맥주를 생산하는 기지 역할을 하다가 1945년 해방 이후 적산기업으로 미군정에 귀속된 후 주주 민대식의 손자 민덕기가 관리를 맡으면서 크라운맥주라는 상표를 쓰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오비(OB)맥주의 전신인 동양맥주의 점유율이 조금 더 높았다. 동양맥주와 치열한 경쟁에 실패해 부실기업으로 지정된 조선맥주는 서울사세청(국세청)과 한일은행으로부터 법정관리를 받았지만, 빚을 갚으면서 7000억원 매출 달성, 국내 최초 캔맥주 생산‧수출이라는 쾌거를 이룩하며 서서히 가치를 올려나갔다.
하이트맥주라는 상표를 사용하게 된 시기는 1993년부터이다. 이 당시 하이트 맥주는 ‘천연 암반수 맥주’를 소비자들에게 강조하면서 사세를 확장해 나갔다. 1976년 경남 마산(현 창원)에 위치한 한독맥주가 파산하면서 법원 경매에 부쳐진 마산공장을 인수했고, 1988년 경남 진주 제3공장을 착공하면서 사세를 넓혀갔다. 이후 생수회사인 ㈜녹수원 설립, 1977년 보배양조와 동주발효를 인수했고, 하이트맥주 점유율이 높아지는 결과를 도출했다. 이 시기 사명을 변경 비로소 하이트진로그룹으로 발전됐다.
해외소주 매출 5000억원 달성 목표… 베트남 공장 설립 이상無
국내 최초 소맥통합을 이뤘다는 평가를 받고있는 하이트진로는 지난해 12월 기준 대기업 집단 브랜드 평판 41위, 재계서열 66위에 위치해 있다. K-컨텐츠가 글로벌 성공을 이룸에 따라 매출 역시도 견조함을 자랑하고 있다. 지난해 하이트진로는 매출 2조5204억원, 영업익 1239억원을 기록했다.
올해 매출과 영업익은 조금 더 상승될 기류를 보이고 있다.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지난 2017년 20%대 초반에 불과했던 글로벌 소주 인지 수준은 지난해 평균 88.6%로 4배 넘게 뛰었다. 유럽과 미국 등 서구권에서는 가볍게 마실 수 있는 과일소주가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하이트진로의 소주 수출액은 1393억원을 기록했다.
든든한 안주가 기반이 되는 우리나라 주류문화와 달리 서구권의 경우 혼술을 하는 인구가 상대적으로 많은데다, 과자나 가벼운 육류 위주의 안주로 술을 마시는 인구가 많다. 이러한 연유로 칵테일의 풍미를 즐길 수 있는 과일소주 판매가 높아 소주 수출액 중 57%가 과일소주이다.
2030년까지 글로벌 대중화를 목표로 잡은 하이트진로는 해외 소주 매출액 5000억원 규모로 설정했다. ‘편하게 한 잔, 한 잔 후 더 가깝게(EASY TO DRINK, DRINK TO LINK)’라는 새로운 글로벌 태그라인을 선보이며 ‘인간관계 소통의 수단으로 세계 소비자들 공략’이라는 포부를 밝혔다.
하이트진로는 글로벌 생산기지를 베트남으로 결정했다. 베트남 수도 하노이 인근 타이빈성에 축구장 11배 크기인 2만5000여평(8만2083㎡)으로 조성되는 베트남 공장은 오는 2026년 완공 예정이며, 초기 생산량 목표는 약 100만 상자(3000만 병)이다. 이는 올해 소주 해외 판매량 목표의 약 17%를 차지하는 양으로, 현재 소주의 글로벌 유통시장 침투율 25.9%에 불과한 것을 오는 2027년까지 28.6%로 올리겠다는 목표도 이미 설정됐다.
국내에는 라이벌이 없는 하이트진로이기에 해외시장에서의 성과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국내에는 무학과 대선, 금복주 등 경쟁사가 존재하지만, 해외 점유율은 미미한 수준인 탓에 하이트진로의 해외 진출에 영향을 주지 못 하고 있다. 이런 차원에서 생각해보면 5000억원 매출 설정은 무리가 아니라는게 업계의 평가다.
황정호 하이트진로 해외총괄 전무는 "가정 채널인 코스트코, 호주 올어스, 영국 세인즈버리, 세븐일레븐, 로손에 입점한 만큼 이제는 프랜차이즈 유통채널, 핵심상권 진출, 거점업소 확보 등을 통해 유통시장 확대를 시도하려고 한다"는 말로 진로(JINRO)의 진로(進路) 설정이 명확함을 표했다. [시사캐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