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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봉창의사기념사업회, 이봉창 의사 의거 94주년 기념식 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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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봉창의사기념사업회, 이봉창 의사 의거 94주년 기념식 거행
  • 황최현주 기자
  • 승인 2026.01.08 16: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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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사)이봉창의사기념사업회 

(시사캐스트, SISACAST=황최현주 기자) 사단법인 이봉창의사기념사업회 주관으로 열린 기념식에는 이승우 서울지방보훈청장, 이규중 광복회 부회장을 비롯한 보훈 관련 인사와 일반시민 1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기념식사, 기념사에 이어 헌화가 진행됐다고 8일 밝혔다.

이봉창 의사(1901.8.1~1932.10.10)는 서울 용산에서 태어나 항일 독립운동에 몸을 바치고자 1931년 1월 독립운동의 중심지였던 상하이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한인애국단의 김구 단장을 만나 거사를 준비하였고 약 1년여의 준비를 마치고 실행을 결심한 이 의사는, 1931년 12월 한인애국단 제1호 단원으로 입단하였다. 

이듬해인 1932년 1월 8일 요요기 연병장에서 관병식을 마치고 환궁하는 일왕 히로히토를 향해 동경 경시청 앞에서 폭탄을 투척하였다. 그날 현장에서 체포된 이 의사는 같은 해 9월 동경 대심원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10월 10일 동경 이치가야 형무소에서 31세의 나이로 순국하였다. 

이봉창 의사의 의거는 한민족의 자존과 독립의지를 전세계에 알렸을 뿐 아니라, 침체기를 겪던 대한민국임시정부와 독립운동 전선에 커다란 활력을 불어넣었다. 윤봉길 의사의 의거로 이어지는 중요한 전환점이 된 의거로 평가받기도 한다.

이봉창 의사는 1962년 우리 정부로부터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대통령장’을 수여받았는데, 현재까지도 최고 건국공로훈장인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지 않아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이 의사의 의거는 당시 일본제국주의의 상징인 일왕을 대상으로 의거를 거행하며 장제스 국민당 정부의 관심과 지원을 끌어내는 등 독립운동에 밑거름이 되었다. 폭탄을 투척한 행위 자체만으로도 독립 의지를 전 세계에 알린 것이다. 이 의사의 의거가 실패가 아닌 성공으로 기억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이봉창 의사 선양사업에는 빙그레 김호연 회장의 각별한 관심과 애정이 담겨 있다. 백범 김구 선생의 손녀 사위인 김 회장은 후손 없이 순국한 이봉창 의사의 안타까운 사정을 전해 듣고 이봉창의사기념사업회를 재건해 회장을 맡았다. 독립운동의 가치가 미래 세대에 온전히 전달되기를 바라며 사재를 출연해 김구재단을 설립하는 등 선열들의 뜻을 계승하고 확산하는 데 앞장서 왔다.

김 회장은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 부회장, 독립기념관 이사 등을 역임하며 다양한 독립유공자 지원 사업에 힘써왔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빙그레가 독립운동과 독립유공자 후손을 지속적으로 조명하며 전개해온 캠페인들은 김 회장의 오랜 관심과 진심이 자연스럽게 반영된 사례로 평가된다.

이봉창의사기념사업회 관계자는 “기념식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이봉창 의사에 대해 관심을 갖고, 감사와 존경의 의미가 확산되었으면 한다”며 “특히 이 의사의 의거는 독립운동의 불씨를 살린 성공한 의거라는 것을 기억해주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시사캐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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