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캐스트, SISACAST= 최기훈 기자)
국내 대형 가상자산 거래소 빗썸에서 상상조차 하기 힘든 사고가 터졌다. 이벤트 당첨자들에게 1인당 2000원을 지급하려다 담당자의 수량 입력 실수로 1인당 2000비트코인(BTC)을 송금해버린 것이다. 당시 시세로 따지면 인당 약 1960억원, 전체 규모는 무려 62만 개로 우리 돈 60조원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액수다.
이는 단순히 ‘클릭 미스’나 실무진의 해프닝으로 치부하기엔 사안이 심각하다. 빗썸이 실제로 보유한 비트코인이 4만여 개에 불과한 상황에서, 존재하지도 않는 ‘유령 코인’ 62만 개가 전산상에 찍혀 실제 유통됐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시세가 급락하고 담보가 강제 청산되는 등 이용자 피해가 속출하며 시장은 유례없는 아수라장을 겪었다.
가장 먼저 제기되는 의문은 어떻게 거래소가 보유량보다 14배나 많은 코인을 순식간에 생성해 배포할 수 있었느냐는 점이다. 답은 중앙화 거래소(CEX)의 운영 방식인 ‘장부 거래’ 시스템에 숨어 있다. 가상자산 거래소는 24시간 쏟아지는 방대한 거래를 신속하고 저렴하게 처리하기 위해 모든 내역을 즉시 블록체인에 기록하지 않는다.
대신 거래소 내부 데이터베이스(DB)의 숫자만 바꾸는 방식을 택하는데, 이는 은행 예금이나 증권사의 거래 원리와도 흡사하다. 실제 코인이 이동하는 시점은 고객이 개인 지갑이나 외부로 ‘출금’을 요청할 때뿐이다. 문제는 이 장부 거래가 ‘정합성’을 잃었을 때 발생한다.
은행은 매일 영업 종료 후 장부상 숫자와 실제 현금 보유액을 맞추는 ‘시제 맞추기’를 엄격히 시행한다. 하지만 빗썸의 경우, 실제 존재하지 않는 62만 개의 비트코인이 전산상에 찍혔음에도 사고 발생 후 20분이 지나서야 이를 인지했다.
경쟁 거래소인 업비트가 5분마다 수량 대조를 수행하는 전담 팀을 운영하는 것과 비교하면, 빗썸의 시스템은 사실상 무방비 상태나 다름없었다. 검증되지 않은 가상의 숫자가 시장에 풀리면서, 실재하지 않는 자산이 진짜 돈으로 둔갑해 거래되는 ‘돈 복사’ 논란이 현실화된 것이다.
더 뼈아픈 대목은 빗썸의 내부통제 시스템이 이 천문학적인 오지급을 걸러낼 안전장치가 전혀 없었다는 점이다. 60조원이라는 막대한 자금이 움직이는 과정에서 이를 제어할 다중 결재 프로세스가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일반적인 금융사나 선도적인 가상자산 거래소들은 리워드 지급 시 여러 팀의 교차 승인을 거치는 방식을 고수한다. 또한, 이벤트용 코인을 별도 계정에 미리 확보해두고 그 한도 내에서만 지급이 이뤄지도록 설계한다. 하지만 빗썸은 실무자의 1단계 결재만으로 지급이 완료되는 구조였고, 한도 설정조차 없어 담당자가 입력하는 대로 유령 코인이 무한정 생성될 수 있었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잘못 입력된 가상의 데이터가 거래까지 돼버린 게 문제의 본질”이라고 강하게 짚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는 거래소의 신뢰도를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사건이다.
최근 3개월간 적게는 수천억 원에서 많게는 수조 원대의 가상자산이 거래되는 빗썸의 내부망이 이토록 허술하다면, 이용자들은 무엇을 믿고 자신의 자산을 맡겨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다. 사고 직후 빗썸 측은 오지급 물량의 99% 이상을 회수했다고 밝혔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은 시장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사고의 여파는 고스란히 이용자들의 피해로 이어졌다. 오지급된 비트코인을 받은 일부 이용자들이 즉각 시장가로 매물을 던지자, 빗썸 내 비트코인 시세는 타 거래소보다 10% 이상 낮은 8100만 원대까지 곤두박질쳤다.
갑작스러운 폭락에 놀라 헐값에 자산을 팔아치운 ‘패닉 셀’ 이용자들은 물론, 비트코인을 담보로 가상자산을 빌린 ‘렌딩 서비스’ 이용자들은 더욱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 담보 가치가 급락하면서 여러 건의 강제 청산이 발생했고, 피해 규모는 최소 수억 원대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빗썸은 강제 청산 피해를 전액 보상하겠다고 발표했으나, 신뢰 회복은 보상금 몇 푼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금융당국은 이번 사태를 엄중히 보고 빗썸에 대한 전격 검사에 착수했다. 금감원은 빗썸이 실제 보유 물량을 상회하는 코인을 지급하게 된 경위와 내부통제의 허점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볼 방침이다.
특히 실무자 혼자서 가상자산 지급을 결정할 수 있었던 구조적 결함은 향후 강력한 제재의 근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고는 가상자산 시장이 여전히 제도권 금융의 안정성에 한참 못 미치는 ‘구멍가게’ 수준의 운영 방식에 머물러 있음을 자인한 꼴이 됐다.
빗썸 사태는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법 2단계 입법 과정에서 중요한 변곡점이 될 전망이다. 내부통제 의무화와 장부 거래의 투명성 확보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됐다. 60조원의 유령 코인이 해프닝 수준에서 수습된 것은 불행 중 다행이지만, 만약 이 코인들이 외부로 출금되는 상황까지 이어졌다면 가상자산판 ‘뱅크런’과 함께 시장 전체가 붕괴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는 “거래소는 이제 빠른 거래보다 안전한 통제가 우선임을 뼈저리게 느껴야 한다”면서 “혁신이라는 이름 뒤에 숨은 부실한 관리 체계가 계속되는 한, 가상자산 시장의 진정한 제도권 안착은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시사캐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