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캐스트, SISACAST= 최기훈 기자)
13년 동안 대형마트의 발을 묶어왔던 ‘새벽배송 금지’ 규제가 존폐의 기로에 섰다. 최근 쿠팡의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건을 계기로 정치권에서 대형마트에 온라인 배송의 길을 열어주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되면서다.
유통업계에서는 “이제야 공정한 운동장이 만들어졌다”는 낙관론이 나오지만, 일각에서는 이미 벌어진 체급 차이와 막대한 투자 비용을 고려할 때 판도를 뒤집기엔 때가 너무 늦었다는 신중론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지난 3월 5일 발의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은 대형마트와 준대규모점포(SSM)가 영업제한 시간(자정~오전 10시) 내에서도 온라인 배송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그동안 쿠팡 등 이커머스 업체들이 365일 24시간 영업하며 시장을 독식하는 사이, 대형마트는 오프라인 점포를 물류 거점으로 활용하지 못해 새벽배송 시장에서 철저히 소외돼 왔다.
정치권의 이번 행보는 독주 체제를 굳힌 쿠팡에 대한 견제 심리와 무관하지 않다. 맞벌이와 1인 가구 증가로 새벽배송이 보편적 복지로 자리 잡은 상황에서, 특정 플랫폼의 보안 사고가 발생하자 대형마트라는 대안을 키워 소비자 선택권을 넓히겠다는 계산이다.
마트 업계 관계자는 “지난 10년간 업계를 짓눌렀던 족쇄가 풀리는 것”이라며 "전국에 있는 점포 인프라를 활용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규제 해소가 곧장 수익성으로 연결될지는 미지수다. 새벽배송의 핵심은 단순한 배송 허용이 아니라, 신선식품을 신선하게 전달할 수 있는 ‘전국 단위 콜드체인’과 골목까지 파고드는 ‘라스트마일 배송망’ 확보에 있기 때문이다.
쿠팡이 오늘날의 점유율을 확보하기까지 수조 원의 적자를 감수하며 물류 센터를 지어 올린 것과 달리, 대형마트들은 기존 오프라인 점포를 배송 거점으로 개조하는 데만도 막대한 비용이 소요된다. 새벽 전담 인력 채용과 냉동 차량 확보 등 운영비 역시 단기간에 회수하기 어려운 고비용 구조다.
업계 전문가는 “이미 물류 최적화를 끝낸 이커머스 강자들과 경쟁하려면 점유율을 뺏어오기 위한 치킨게임 수준의 공격적인 할인과 투자가 불가피한데, 이는 양날의 검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더 큰 문제는 현재 대형마트 기업들의 체력이 이러한 투자를 감당하기에 녹록지 않다는 점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대형마트 매출은 4.2% 감소하며 유통업 비중이 사상 처음 10% 아래로 추락했다. 오프라인 본업의 성장성이 둔화하면서 현금 창출력이 급격히 약해진 상태다.
수익성이 낮은 새벽배송 시장에 섣불리 뛰어들었다가는 기존 오프라인 사업에서 벌어들인 이익마저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커머스 업계가 1% 내외의 마진율을 놓고 출혈 경쟁을 벌이는 상황에서, 재무 건전성이 악화된 대형마트들이 새벽배송의 늪에 빠질 경우 기업 전체의 펀더멘털이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결국 이번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대형마트가 쿠팡의 아성을 단숨에 넘어서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이미 소비자의 습관은 특정 플랫폼에 고착화되었고, 물류 효율성 면에서도 상당한 격차가 벌어져 있기 때문이다. 소상공인 단체의 거센 반발과 의무휴업 유지라는 ‘반쪽짜리 완화’도 대형마트가 넘어야 할 산이다.
규제라는 족쇄가 풀린 운동장에서 대형마트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물류 투자를 넘어, 기존 오프라인 매장의 강점인 신선식품의 압도적 품질과 오프라인 경험을 온라인 배송에 어떻게 녹여낼지가 관건이 될 것이다.
체급 차이를 인정하고 자신들만의 차별화된 무기를 찾지 못한다면, 새벽배송 허용은 승리의 열쇠가 아닌 수익성 악화라는 독배가 될 수도 있다. [시사캐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