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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이슬의 웰라이프] 두 개의 C가 이어져 S가 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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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이슬의 웰라이프] 두 개의 C가 이어져 S가 될 때
  • 박이슬 문화평론가
  • 승인 2026.04.12 15: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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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캐스트, SISACAST= 박이슬 문화평론가)

 

평가의 언어는 객관을 가장하지만, 실제로는 조직이 선호하는 방식에 가까운 사람을 선택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사진=Freepik]

조직사회는 사람을 등급으로 분류한다. A, B, C. 겉으로는 성과를 관리하기 위한 효율적인 체계처럼 보이지만, 그 한 글자에는 조직이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가 고스란히 담긴다. 문제는 그 기준이 언제나 합리적인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때로 평가는 능력보다 분위기를, 성과보다 관계의 온도를 반영한다. 그렇게 평가의 언어는 객관을 가장하지만, 실제로는 조직이 선호하는 방식에 가까운 사람을 선택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한 예로 어떤 사람이 있었다. 그는 한 기관의 장에게 “C도 아깝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유는 의외였다. 근무태만이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지나치게 성실했기 때문이었다. 그 조직은 이익을 추구하는 구조가 아니었고, 기관의 대표가 급여를 받는 형태로 지자체 예산을 지원받아 운영되는 곳이었다.

본질적으로 성과지향적일 필요가 크지 않았고, 자연스럽게 관계지향적인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었다. 근무시간과 업무 강도 또한 비교적 유연하게 운용되는 환경 속에서, 정해진 기준을 지키며 자신의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려는 태도는 오히려 낯설게 받아들여졌다. 함께 어우러지기를 기대했던 동료들에게 그의 모습은 조화가 아니라 긴장으로 읽혔고, 그 긴장은 결국 전반적인 문제로 번졌다.

기관은 분명히 말했다. “우리는 성과보다 관계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네가 있는 것이 우리에게 독이 된다.” 더 나아가 “너의 외부 평판이 어떤 줄 아느냐”는 말로, 내부에서 왜곡된 소문을 마치 객관적인 평가인 것처럼 전달하며 그 사람의 존재를 깎아내렸다.

평가는 더 이상 업무의 결과를 설명하는 도구가 아니라, 문제 삼는 방식으로 사용되었다. 성실함이 기준이 아니라 부담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는 자리나 재물을 탐하는 사람이 아니었으며 직함이나 보상을 좇기보다 맡은 일을 책임 있게 마무리하는 데 집중하는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그 시간을 견디려 했다. 그 이유는 단 하나, 그 해에 맡겨진 업무를 끝까지 마무리하고 스스로 물러날 계획을 세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필요하다면 한 걸음 더 움직였고, 누가 보지 않아도 끝까지 해내는 태도를 당연하게 여겼다. 그래서 그 기관을 제외한 다른 곳에서는 늘 신뢰를 받았다. 연차가 낮더라도 중요한 역할에 배정되었고, 그렇지 않은 자리에서도 맡은 일을 스스로 의미 있는 결과로 만들어 왔다.

다른 기관에서는 늘 승진 후보로 거론되었지만, 정작 본인은 자리 욕심이나 금전적 보상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일이 가진 무게였고, 맡겨진 역할에 대한 책임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지점이 문제로 지적되었다. 어떤 조직에서는 책임감이 신뢰의 근거가 되지만, 어떤 조직에서는 균형을 깨는 요소로 받아들여진다. 성과를 분명히 드러내는 태도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의 간극을 만들고, 노력의 밀도가 높을수록 관계의 긴장을 불러온다는 논리였다. 결국 그는 그 기관에서 밀려나듯 내쫓김을 당했다. “C도 아깝다. 평가는 외부에서 하는 것이다”라는 메시지와 함께.

사람이 지나온 시간 속에서 쌓아온 경험과 결과는 사라지지 않는다. [사진=Freepik]

하지만 평가는 그 조직 안에서만 유효한 기준일 뿐이었다. 그 사람이 지나온 시간 속에서 쌓아온 경험과 결과는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와 함께 일해본 외부 기관들이 먼저 그를 찾기 시작했다. 책임감을 기억하는 사람들, 결과를 경험한 사람들,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다했던 모습을 지켜본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연락을 해왔다. 특별히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음에도, 필요한 곳에서 먼저 불려가는 사람이 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그의 여정이 문자 그대로 C가 2개가 이어져 S가 되어가는 모습과 닮아 있다는 사실이다. 서로 등을 지고 떨어져 있던 두 개의 C가 방향을 달리해 연결될 때 하나의 S가 만들어지듯, 한 곳에서의 배제와 다른 곳에서의 인정이 이어지며 전혀 다른 의미가 형성되었다. 한 조직에서는 과하다고 여겨지고 왜곡되었던 성실함이, 다른 다수의 조직에서는 가장 신뢰할 수 있는 기준이 되었기 때문이다.

관계를 중시하는 문화 자체가 문제인 것은 아니다. 협력과 배려는 조직을 건강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다. 그러나 지나친 관계 지향주의가 성과를 억누르는 명분이 되는 순간, 조직은 스스로 성장의 가능성을 제한하게 된다. 노력하지 않는 것이 미덕이 되고, 책임을 다하는 태도가 부담이 되는 환경에서는 결국 누구도 최선을 다하려 하지 않게 된다. 반대로 책임을 존중하는 곳에서는 굳이 자신을 과시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인정이 쌓인다.

그 사람은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맡은 일은 끝까지 해내고, 필요하다면 기꺼이 더 움직인다. 달라진 것은 그를 바라보는 기준뿐이었다. 한 기관에서는 C조차 아깝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다른 곳에서는 먼저 찾는 사람이 되었다. 내쫓김을 당했지만 결과적으로 더 존중받는 자리에 놓이게 되었다.

우리는 누군가의 평가로 자신을 단정짓는 순간이 온다. 그러나 평가는 언제나 특정한 환경과 기준 속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절대적일 수 없다. 어떤 곳에서는 과하다고 여겨지는 태도가, 다른 곳에서는 꼭 필요한 기준이 되기도 하기 때문에 결국 진짜 중요한 것은 타인의 평가의 글자가 아니라 내가 축적한 시간의 신뢰이다.

두 개의 C가 이어져 S가 되듯, 배제와 인정은 때로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된다. 조직의 한 줄 평가는 순간이지만, 한 사람의 묵묵함은 시간을 통과하며 증명된다.

결국 사람의 가치는 누가 어떤 글자를 매겼는지가 아니라, 어디에서 어떤 기준으로 기억되는가에 의해 완성된다.

C라는 낙인이 남긴 상처보다, 그 C를 이어 S로 만든 시간의 축적이 더 오래 남는다. [시사캐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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