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1-06 22:03 (금)
​[영화로운 세상 읽기 No.1] 파수꾼의 두 얼굴 : 괴물이 된 알론조와 고독한 세르피코 (1부)
상태바
​[영화로운 세상 읽기 No.1] 파수꾼의 두 얼굴 : 괴물이 된 알론조와 고독한 세르피코 (1부)
  • 양태진 기자
  • 승인 2026.07.17 11: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스크린 렌즈를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을 정밀하게 읽어내는 시간

기존의 인물에 집중했던 [영화로운 수요 1인] 코너가 개편되었습니다.

법을 수호하는 파수꾼은 어떻게 괴물이 되고, 어떻게 영웅이 되는가

(시사캐스트, SISACAST=양태진 기자)

현실이 영화를 모방하는 것인지, 영화가 차마 현실을 다 담지 못해 비명을 지르는 것인지 혼란스러운 시대다. 신뢰와 정의의 최전선에 서서 시민을 보호해야 할 공권력이 사리사욕의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뉴스가 연일 지면을 장식할 때, 대중은 분노를 넘어 깊은 무력감에 빠지는 법.

이는 법을 집행하는 자들이 스스로 법 위의 군림자가 되는 순간, 그들이 쥔 총구와 배지는 공공의 방패가 아닌 가장 비겁하고도 악랄한 무기가 되기 때문일 터,

 

공권력의 타락과 정의를 다룬 두 마스터피스의 만남. 어둠 속에 침잠한 타락한 파수꾼과 빛 아래 홀로 선 고독한 정의로 상징되는 영화 <트레이닝 데이>와 <세르피코>의 오리지널 포스터의 교차 편집. 공권력이라는 하나의 심연을 바라보는 인간 영혼의 양 극단을 두 얼굴로 시각화한 것으로 이 묵직한 느와르의 흑백과 강렬한 팝아트의 원색은 서로 다른 시대, 서로 다른 질감으로서 법을 지키는 자들이 마주한 도덕적 분열과 선택의 순간들을 팽팽히 드러내고 있다. '괴물이 된 베테랑' 알론조와 '상식이 된 이방인' 세르피코의 이 상징적 두 얼굴의 교차는, 우리가 수호해야 할 진정한 정의의 파수꾼은 누구인가라는 근원적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물론 두 작품을 보고 난 뒤의 얘기겠지만) 헌데 재미있는 부분은 두 작품 모두 남우주연상과 깊은 인연이 있건만, '덴젤 워싱턴'은 <트레이닝 데이>의 악랄한 '알론조' 역으로 흑인 배우 역사상 두 번째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거머쥐었으며, '알 파치노'는 <세르피코>로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을 받으며 연기 인생의 전성기를 열었다. 악의 정점에 선 자와 정의의 최전선에 선 자, 이 두 명배우의 인생 연기 또한 이 한 장의 프레임에서 격돌하고 있다.(이미지 출처: 영화 <트레이닝 데이>(워너 브러더스 픽처스) 및 <형사 서피코>(파라마운트 픽처스) 오리지널 공식 포스터 (비평 및 소개 목적의 인용))

여기, 전혀 다른 시간과 공간에서 법의 수호자라는 같은 이름을 달고 달렸던 두 편의 영화를 통해, 지금 우리가 발 디딘 현실을 정밀하게 읽어보려 한다. 2001년의 서늘한 서스펜스 <트레이닝 데이(Training Day)>와 1973년의 뜨거운 실화 <세르피코(Serpico)>가 바로 그것.

이 두 영화는 공권력의 타락이라는 하나의 거대한 심연을 향해 달려가지만, 그 심연을 대하는 인간의 영혼이 어떻게 극단으로 갈라질 수 있는지를, 거울을 사이에 둔 대척점처럼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1막. 늑대를 잡기 위해 스스로 괴물이 된 남자 (영화 '트레이닝 데이'의 알론조)

어둠 속에 침잠하여 법 위의 군림자가 된 타락한 파수꾼, '알론조'. 그의 묵직한 가죽 재킷과 목에 걸린 은색 십자가는 정의의 방패가 아닌 스스로 신이 되려 했던 한 인간의 오만한 아우라를 대변하는듯 보인다. 거울 너머 저 멀리, 빛과 상식의 영역에 외롭게 선 '세르피코'와 대척점을 이루는 '알론조'의 어두운 실루엣은, 공권력이 통제를 잃고 폭주할 때에, 그 영혼이 얼마나 깊은 심연으로 추락하는지를 시각적으로 상징하고 있다.
​[영화 속 숨은 1인치] '덴젤 워싱턴'은 '알론조'라는 복합적인 악인의 아우라를 살리기 위해 치밀한 캐릭터 연구를 거듭했다. 그가 감독에게 직접 제안하여 완성한 '알론조' 특유의 삭발 스타일과 끊임없이 손목시계를 만지작거리는 강박적인 행동(OCD* 설정)은 캐릭터의 내면적 불안과 통제욕을 시각화한 백미로 꼽힌다. 특히 영화 최고의 명대사이자 그의 비뚤어진 정의관을 요약하는 "양들을 지키기 위해선 포식자를 사냥해야 하고, 그 포식자를 잡기 위해선 스스로가 더 지독한 괴물이 되어야 해."라는 대사는, 법을 지키는 파수꾼이 어떻게 스스로 늑대가 되는지 그 정당화의 논리를 서늘하게 보여주고 있다.(이미지 출처: [영화로운 세상읽기] 전용 아카이브)​(*본 이미지는 칼럼의 주제 의식 상징화를 위해 특별 제작된 일러스트입니다.)

영화 <트레이닝 데이>의 베테랑 마약수사반 형사 '알론조 해리스'(덴젤 워싱턴 분)는 LA 경찰청 소속이지만, LA의 범죄 지대에서 법과 원칙을 무시한 채 자신만의 방식으로 권력을 행사하는 나름의 권력자다. 그가 지배(?)하는 로스앤젤레스의 어두운 뒷골목에선 법전의 활자 또한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는데,

신참 형사 '제이크 호이트'(에단 호크 분)가 하루 동안 그의 차에 동승한 날, '알론조'는 ‘늑대를 잡으려면 늑대가 되어야 한다’는 식의 지독한 현실론을 내세우며 '제이크'의 도덕적 신념을 사정없이 흔들어 놓는다.

*OCD : 심리학, 의학 용어인 '강박장애(Obsessive-Compulsive Disorder)'를 뜻하는 약어로, 영화 속 '알론조'가 위험한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손목시계를 병적으로 자주 만지거나 끊임없이 시간을 확인하고 조정하는 반복적인 행동으로 확인할 수 있다.

 

영화 최고의 명대사이자 그의 비뚤어진 정의관을 요약하는 "양들을 지키기 위해선 포식자를 사냥해야 하고, 그 포식자를 잡기 위해선 스스로가 더 지독한 괴물이 되어야 한다"며, 밀폐된 '셰보레 몬테카를로' 차량 안에서 신참 '호이트'를 압도하며 대사를 읊조릴 때에는 그 서늘함이 극에 달한다. 이때 룸미러 너머로 번뜩이는 비리 경찰 '알론조'의 눈빛은 앞으로 벌어질 일들에 대한 집착 때문인지 상당한 불안감을 내포하고 있다.(상단) 밀폐된 차량 안에서 신참의 영혼을 잠식해 들어가는 그 서늘한 가스라이팅의 순간. 이 영화 속, '알론조'의 '셰보레 몬테카를로' 차량은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다. 자신만의 뒤틀린 법과 규칙으로 상대를 굴복시키는 아주 폐쇄적인 심리적 가스실로 기능하는 것.​(하단)(이미지 출처: 영화 <트레이닝 데이> 공식 스틸컷, Warner Bros. Pictures)

 

“To protect the sheep, you gotta catch the wolf. And it takes a wolf to catch a wolf.”

"양을 지키려면 늑대를 잡아야지. 그리고 그 늑대를 사냥할 수 있는 건, 오직 또 다른 늑대뿐이라구."

 

'알론조'의 이 달콤하고도 기만적인 독백은 비리 권력자들이 스스로를 정당화할 때 쓰는 가장 흔한 논리다. 그는 정의라는 목적을 위해 악이란 수단을 동원하는 것처럼 자신을 포장하지만, 한 꺼풀만 벗겨내면 그 본질은 추악한 탐욕에 불과한 것.

 

​[영화 속 명장면 4컷] 사법 시스템의 사각지대(?)와도 같은 옥상에 모여 은밀한 모의를 감행하는 파수꾼들.(최상단) 이후 그들이 짠 계략대로 가짜 영장 수색을 진두지휘하며 신참을 도덕적 딜레마로 밀어 넣는 '알론조'의 압박 모습.(상단) 이에 맞서 정의와 생존의 경계에서 총구를 겨누는 '호이트'의 저항.(하단) 그리고 결국 폭주하는 공권력의 민낯을 드러내며 실소를 참지 못하는 '알론조'.(최하단) 이 팽팽한 순간들은 공권력이 통제력을 잃고 사유화될 때 일어나는 카르텔의 폭력성을 날것 그대로 폭로한다. 겉으로는 '안전'과 '수사'라는 숭고한 법집행을 이야기하지만, 실상은 자신들의 이권과 증거인멸을 위해 거대한 사법망을 기만하는 사적 집단에 불과한 것. 이에 ​"우리를 지키는 파수꾼은 누가 감시할 것인가"라는 해묵은 질문 하나가, 이 정교한 유착의 고리 속에서 타락해가는 괴물들과 맞서 홀로 상식을 지키려는 자의 처절한 사투로 스크린 너머의 현실에 무겁고도 서늘한 질문을 던진다.
​[영화 속 숨은 1인치] 이 영화의 매력 중 하나는 힙합 신의 전설적인 인물들이 신스틸러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두 번째 분할 컷의 우측에 등장하는 인물은 전설적인 프로듀서이자 래퍼인 '닥터 드레(Dr. Dre)'로, '알론조'의 부패한 카르텔 동료 경찰 '폴' 역을 맡아 열연했다. 이뿐만 아니라 오프닝의 샌드맨 집 수색 장면에서는 소울 · R&B의 거장 '메이시 그레이(Macy Gray)'가 샌드맨의 아내 역으로 나와 '덴젤 워싱턴'과 불꽃 튀는 연기 대결을 펼쳤고, 특히 가짜 영장을 들고 샌드맨의 집을 털러 가기 직전, '알론조'에게 협박당해 정보를 넘겨주는 휠체어 탄 마약 딜러 '블루' 역으로는, 힙합의 대부 '스눕 독(Snoop Dogg)'이 카메오로 깜짝 출연해 특유의 능청스럽고도 서늘한 연기로 신을 완벽히 훔쳐냈다.(이미지 출처: 영화 <트레이닝 데이> 공식 스틸컷, Warner Bros. Pictures)

마약상들의 돈을 가로채고, 가짜 압수수색 영장으로 민가를 털며, 자신을 방해하는 자는 사법 시스템의 허점을 이용해 합법적으로 제거한다. 이러한 '알론조'의 과도한 독선은 공권력이 통제를 잃고 폭주할 때 과연 얼마나 참혹한 결과가 빚어질 수 있는지, 영화는 그 본색을 서서히 드러내기 시작하는데,

이런 '알론조'에게 '공권력'이란, 정의의 도구가 아닌 자신의 제국을 유지하기 위한 방패막이었을 뿐, 그가 뿜어내던 압도적인 위압감도 결국, 권력 위에 남몰래 쓴 '합법'의 가면으로만 가능했던 것이었다.

그는 조직 내부의 묵인과 연대라는 시스템의 카르텔 속에서 점점 더 대담해졌고, 법의 테두리 안에서 완벽하게 보호받는, ‘합법적 괴물’이 될 수 밖에 없던 것이다.

 

*이 영화 속 장면과 무관함.(이미지 출처: [영화로운 세상읽기] 전용 아카이브)​(*본 이미지는 칼럼의 주제 의식 상징화를 위해 특별 제작된 일러스트입니다.)

헌데 이 지점에서 우리는, '알론조'가 구축한 제국이 단지 영화라는 스크린 속에만 갇힌 허구가 아님을 단번에 직감할 수 있다. 최근 우리 사회를 뒤흔든 일선 경찰서의 부실 수사와 은폐, 그리고 증거를 지우고 카르텔을 지키기 위해 사법 망을 기만했던 일련의 비리 사건들을 보면, 

'안전'과 '수사'라는 숭고한 임무 뒤에 숨은 공권력의 사적 유착과 도덕적 불감증 등이, 영화 속 '알론조'의 독선과 서늘하리만치 닮아 있는 것. 제 식구를 감싸고 진실을 은폐, 묵살하려던 이 현실의 어두운 이면은

25년 전 이 영화가 던진 "우리는 파수꾼의 눈과 행동을 어떻게 믿을 것인가"라는 질문이 여전히 유효함을, 그리고 그것이 뼈아픈 시의적 경고였음을 확인시켜주는 것이었다.

 

​[영화 속 명장면 3컷] 견고해 보이기만했던 공권력 방패막이(?) 경찰 차량이 만신창이가 된 이후, 비리경찰 '알론조'의 처절한 움직임 모습.(상단) 그런 자신이 파놓은 도덕적 심연 속으로 추락하듯, 길바닥 위로 내쳐져버린 음흉한 파수꾼의 마지막 초상.(중간) 그리고 법의 면죄부를 박탈 당할 위기 속에서 그의 불안과 당황은, 거대한 파멸과 마주하기 직전으로 치닫는다. 사적 유착과 불감증으로 얼룩진 이러한 공권력이 마주하게 될 운명은 오직 하나, 스크린을 뚫고 나올 이 영화의 엔딩일 뿐인 것.(하단) 주연 배우를 맡은 '덴젤 워싱턴'은 이 당시 헐리우드에서 정의롭고 올바른 흑인 리더 역할 만을 도맡아 왔건만, 커리어 사상 가장 파격적이고 악랄한 '부패 경찰'로 변신해 오스카를 구원했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헐리웃 영화사에 더 깊은 발자취를 남길 수 있었다.(이미지 출처: 영화 <트레이닝 데이> 공식 스틸컷, Warner Bros. Pictures)

결국 '알론조'의 폭주는 그가 믿었던 시스템과 동료들이 도덕적 한계점에 도달해 그를 외면한 순간, 비참한 파멸의 뇌관을 터뜨리고만다. '늑대를 잡기 위해 스스로 늑대가 되었다'던 그의 호기로운 변명은 본질을 은폐하기 위한 비겁한 자기합리화였을 뿐,

손목시계를 매만지며 그토록 통제하려 애썼던 '알론조'의 판은 결국, 그가 멸시하던 거리의 룰과 사법 정의라는 양날의 칼날에 의해 사정없이 해체되고 만다. 법이라는 면죄부를 빼앗긴 파수꾼이 마주하게 될 운명은 오직 단 하나, 자신이 파놓은 심연 속으로의 참혹한 추락뿐인 것을.[시사캐스트]

 

​다음 [2부]로 계속됩니다. (침묵 속에서 홀로 상식을 외친 자, <세르피코>)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