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의 인물에 집중했던 [영화로운 수요 1인] 코너가 개편되었습니다.
법을 수호하는 파수꾼은 어떻게 괴물이 되고, 어떻게 영웅이 되는가
(시사캐스트, SISACAST=양태진 기자)
시스템의 괴물이 되어버린 <트레이닝 데이> 속 '알론조'의 처절한 몰락은 비단 영화 내 허구로만 머물지 않는다. 오늘날 우리가 목도하는 권력형 비리와 조직적 묵인의 잔재들 역시, 개인의 도덕성이 부패한 체제와 타협했을 때 어떤 괴물이 탄생되는지를 서늘하게 증명하고 있는 것.
허나 욕망에 굴복한 자의 끝은 참혹한 자멸뿐이라는 진리는, 불의가 일상이 된 시대일수록 더욱 또렷한 경고음을 울려대고 있다. 그 때문인지 거대한 침묵의 제국 속에서도 누군가는 괴물이 되길 거부한 채로 외로운 싸움을 하기도 하는 법. 모두가 부패를 ‘관행’이라 부를 그 시점에, 대세를 거스르며 정직이 내리는 형벌을 온몸으로 견뎌야 했던 진짜 형사의 이야기, 그가 바로 여기 서 있는 것처럼 말이다.
2막. 모두가 침묵할 때 홀로 상식이 되려 했던 이방인 (깨진 거울 속의 형사, '서피코')
영화 <트레이닝 데이>에서의 '알론조'가 시스템의 썩은 물을 받아먹으며 괴물로 진화했다면, 그로부터 30년 전 뉴욕의 거리에는 그 더러운 물에 조금의 발도 담그지 않으려 처절하게 버틴 사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실존 인물 '프랭크 세르피코'(Frank Serpico, 영화상의 한글 정식 표기는 '서피코')'이자 그 삶을 다룬 영화 <서피코(Serpico, 1973)>에서의 '서피코'다.
경찰 학교를 갓 졸업한 젊고 정의로운 청년 '서피코'(알 파치노 분)가 마주한 뉴욕 경찰 조직은 이미 뿌리부터 썩어 문드러진 상태였다.
동료 형사들은 매달 정기적으로 마약상과 도박업자들로부터 뇌물을 수거해 봉투에 담아 나누어 가지는가 하면, 이를 거부하는 '서피코'를 오히려 '조직을 위협하는 위험 분자'이자 배신자로 취급했던 것.
"Who can trust a cop who doesn't take money?"
(뇌물을 받지 않는 경찰을 누가 믿을 수 있겠어?)
영화 속 한 동료의 이런 기괴한 대사만큼이나 그런 부패한 집단이 생존하는 방식과 심리를 잘 설명해주는 것도 없다. 비리가 상식이 된 집단 내에서 청렴과 정의는 오히려 부조리이자 그들의 시선에선 악(惡)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을.
[영화 밖 숨은 1인치] 영화상의 충격적인 총격 장면은 1971년 2월 3일 브루클린 윌리엄스버그(778 Driggs Ave.) 4층에서 벌어진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수염을 기르고 털모자를 쓴 채 잠입 수사에 나섰던 '세르피코'는 동료들의 방조 속에 마약상이 쏜 총탄에 얼굴을 맞고 쓰러졌다. 죽음의 문턱에서 기적적으로 회복한 그는 냅 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용기 있는 증언을 마쳤으며, 1972년 6월 15일 NYPD 명예훈장을 끝으로 경찰직을 내려놓고 스위스로 떠났다. 실제 '프랭크 서피코'는 "오늘날에도 그 장면을 보는 것이 매우 힘들 정도로 영화가 참혹한 사실을 그대로 재현했다"고 회고한 바 있다.
그럼에도 '서피코'는 동료들의 회유와 협박 속에서도 끝끝내 돈 봉투를 거부하건만, 그 대가는 참혹한 것이었다. 그는 순찰 도중 동료들의 방조 또는 고의적인 방관 속에서 얼굴에 총을 맞고 쓰러지고 마는데..
이러한 '서피코'의 고독은 단순한 물리적 고립이 아닌 것이었다. 국가가 부여한 신성한 권력이 자신을 죽음으로 밀어 넣을지도 모른다는 공포, 그리고 나 하나 바르게 산다고 해서 이 거대한 시스템을 바꿀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근원적 절망감과의 싸움인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침묵을 택하는 대신, 내부 고발자가 되어 온 세상에 그 민낯을 까발리는 길을 선택한다.
부당함에 격정적인 언성을 높이고 있는 형사 '서피코'(알 파치노)의 모습. 정의감으로 들끓는 그와 그릇된 시스템 안에 안주하려는 이들 사이의 온도차가 한 프레임 안에 담겼다.(하단)(이미지 출처: Image Courtesy of Paramount Pictures, Artists Entertainment Complex & Cinema 5 Distributing (보도·비평용 인용))
[영화 속 숨은 1인치] 거장 '시드니 루멧'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알 파치노'가 주연을 맡은 영화 <형사 서피코(Serpico), 1973>는 330만 달러의 제작비로 북미에서만 약 2,980만 달러의 흥행을 기록하며 비평과 상업성 모두를 잡은 명작으로 손꼽힌다. '알 파치노'는 내부 고발자의 고뇌와 절박함을 압도적인 연기로 풀어내 생애 첫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을 거머쥐었으며,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까지 올랐다.
그럼 여기서 잠깐. 합리화의 늑대, '알론조'와 외로운 파수꾼, '서피코'가 마주한 현실에서 이 두 영화를 관통하는 가장 소름 돋는 지점이 있다면 그것은 과연 뭘까.
그건 바로 '시스템의 묵인'이다. '알론조'의 악행이 가능했던 이유는 그의 뒤를 봐주는 고위 간부들과 사법 카르텔이 존재했기 때문. 그리고 '서피코'가 죽음의 문턱까지 가야 했던 이유 역시도 조직 전체가 비리를 수호하기 위해 카르텔을 형성해 왔기 때문이었다.
[영화 밖 숨은 1인치] '세르피코'는 수년간 조직 내부 경로를 통해 경찰 비리를 제보했으나 수뇌부는 이를 철저히 묵살했다. 이에 굴하지 않던 '세르피코'는 '뉴욕타임스'의 '데이비드 버넘' 기자와 1년에 걸친 밀착 취재 끝에 1970년 4월 25일, 자신의 실명을 내걸고 폭로 기사의 주역으로 나섰다. 이 특종은 뉴욕 사회에 거대한 파장을 일으켰고, 부패를 파헤치는 '냅 위원회(Knapp Commission)' 출범의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경찰 비리 뉴스들 역시 이 두 영화의 현실적 변주와 다름 아닌데 있어, 권력을 사유화한 자들은 언제나 '알론조'처럼 "조직을 위해서", 혹은 "어쩔 수 없는 현실적인 선택"이라며 스스로에게 늑대의 가면을 씌운다.
반면 부조리에 의문을 제기하는 내부의 상식적인 목소리들은 '서피코'처럼, 조직의 부적응자로 낙인찍히며 철저하게 고립되고 배제되어 버리는데,
[영화 밖 숨은 1인치] 1936년 4월 14일 생인 '프랭크 서피코'(본명 '프란체스코 빈센트 서피코')는 현재 90세의 나이로 뉴욕주 컬럼비아 카운티에 거주하고 있다. 시스템의 더러운 물에 물들지 않고 홀로 상식이 되려 했던 그의 삶은,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정직과 존엄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묵직하게 물어오고 있다.
영화 <트레이닝 데이>의 종장에서 나름의 제국(?)을 건설하려 했던 '알론조'가, 결국 자신이 그토록 무시했던 뒷골목의 평범한 시민들에게 외면당하고 러시아 마피아들의 총탄에 처참한 최후를 맞이한 것처럼,
그리고 이와는 반대로 영화 <서피코>의 실제 주인공 '프랭크 세르피코'가 동료들의 방조 속에 입은 총상 후유증을 끌어안고 부패 척결 청문회에 서야 했던 것에서부터, 증언을 마친 뒤 NYPD 최고 훈장을 받고 퇴직한 그가 부패한 조직에 대한 깊은 환멸을 뒤로한 채 쓸쓸히 유럽으로 떠난 것에서 처럼
악인의 파멸은 영화처럼 극적이지만, 의인의 투쟁 뒤에 남는 현실은 아주 차갑고도 쓰라린 것을.
그럼에도 우리가 현실의 뉴스를 보며 느끼는 깊은 갈증은 모두가 눈을 감고 귀를 막을 때, 자신의 안위를 걸고 "이것은 틀렸다!"라 말할 수 있는 그런 단 한 명의 '진짜 파수꾼'에 대한 갈증이 아닐는지.
법과 권력이라는 칼자루가 주어졌을 때, 그것을 쥐고 괴물이 되는 길을 선택한 '알론조'를 묵과할 것인가, 아님 '서피코'처럼 뼈를 깎는 고독을 감내하며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는 숭고한 행위를 진정으로 추켜세울 것인가.
영화를 렌즈 삼아 마주한 오늘의 세상은 우리에게 묻는다. 법이 제 기능을 잃고 흔들릴 때에, 우리는 과연 어떤 파수꾼의 얼굴을 끝까지 지지할 것인지. 영화 같은 현실이 매일같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지금, 이 두 편의 영화는 순수한 엔터테인먼트를 넘어 우리가 반드시 바라봐야 할 가장 정직한 거울이 아닐 수 없다. [시사캐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