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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운 세상 읽기 No.1] 파수꾼의 두 얼굴 : 괴물이 된 알론조와 고독한 세르피코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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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운 세상 읽기 No.1] 파수꾼의 두 얼굴 : 괴물이 된 알론조와 고독한 세르피코 (2부)
  • 양태진 기자
  • 승인 2026.08.01 10: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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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 렌즈를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을 정밀하게 읽어내는 시간

기존의 인물에 집중했던 [영화로운 수요 1인] 코너가 개편되었습니다.

법을 수호하는 파수꾼은 어떻게 괴물이 되고, 어떻게 영웅이 되는가

(시사캐스트, SISACAST=양태진 기자)

​시스템의 괴물이 되어버린 <트레이닝 데이> 속 '알론조'의 처절한 몰락은 비단 영화 내 허구로만 머물지 않는다. 오늘날 우리가 목도하는 권력형 비리와 조직적 묵인의 잔재들 역시, 개인의 도덕성이 부패한 체제와 타협했을 때 어떤 괴물이 탄생되는지를 서늘하게 증명하고 있는 것.

허나 욕망에 굴복한 자의 끝은 참혹한 자멸뿐이라는 진리는, 불의가 일상이 된 시대일수록 더욱 또렷한 경고음을 울려대고 있다. 그 때문인지 거대한 침묵의 제국 속에서도 누군가는 괴물이 되길 거부한 채로 외로운 싸움을 하기도 하는 법. 모두가 부패를 ‘관행’이라 부를 그 시점에, 대세를 거스르며 정직이 내리는 형벌을 온몸으로 견뎌야 했던 진짜 형사의 이야기, 그가 바로 여기 서 있는 것처럼 말이다.

 

2막. 모두가 침묵할 때 홀로 상식이 되려 했던 이방인 (깨진 거울 속의 형사, '서피코')

알론조와 서피코, '타협'과 '존엄'의 대척점에 선 두 형사라는 주제로, 거울 너머의 시스템 부패에 타협하며 스스로 괴물이 되어버린 1부에서의 '알론조'(덴젤 워싱턴 분)가 십자가 목걸이를 늘어뜨린 채 서늘한 눈빛을 보내고 있다면 그 반대편, 프레임 밖 머리 뒤로 성광(Halo)을 두른 채 담배를 쥔 '서피코'(알 파치노 분)는 조직의 침묵에 맞선 순교자처럼 서 있다. 욕망에 굴복한 뒤에 '자멸한 자'와 비리의 물결에 단 한 발도 담그지 않으려 정직이라는 십자가를 짊어졌던 거울 밖의 외로운 한 개인의 모습에서 두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를 이 한 장의 이미지는, 부패의 시대 앞에서 한 인간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그에 대한 숭고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이미지 출처: [영화로운 세상읽기] 전용 아카이브)​(*본 이미지는 칼럼 내용의 상징화를 위해 특별 제작된 일러스트입니다.)

영화 <트레이닝 데이>에서의 '알론조'가 시스템의 썩은 물을 받아먹으며 괴물로 진화했다면, 그로부터 30년 전 뉴욕의 거리에는 그 더러운 물에 조금의 발도 담그지 않으려 처절하게 버틴 사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실존 인물 '프랭크 세르피코'(Frank Serpico, 영화상의 한글 정식 표기는 '서피코')'이자 그 삶을 다룬 영화 <서피코(Serpico, 1973)>에서의 '서피코'다.

경찰 학교를 갓 졸업한 젊고 정의로운 청년 '서피코'(알 파치노 분)가 마주한 뉴욕 경찰 조직은 이미 뿌리부터 썩어 문드러진 상태였다.

 

수염도, 장발도 아니던 시절의 '프랭크 서피코' 모습. 경찰학교를 갓 졸업한 신참 시절, 정복을 입은 동료들 사이에서의 그의 눈빛엔 아직 조직에 대한 환멸이 스미기 이전의 팽팽한 긴장감이 서려 있다.(상단) 이후, 위장 잠복근무 중의 서피코가, 경광등 달린 차량 곁에서 지인과 대화를 나누는 이 장면은, 정규 복장을 벗어던진 그의 잠입수사가 일상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 장면에서 그의 지인이 다음과 같은 뼈아픈 대사를 스치듯 읊조린다. "뇌물 안받는 경찰을 누가 믿겠어?"(하단)(이미지 출처: ​Image Courtesy of Paramount Pictures, Artists Entertainment Complex & Cinema 5 Distributing (보도·비평용 인용))

동료 형사들은 매달 정기적으로 마약상과 도박업자들로부터 뇌물을 수거해 봉투에 담아 나누어 가지는가 하면, 이를 거부하는 '서피코'를 오히려 '조직을 위협하는 위험 분자'이자 배신자로 취급했던 것.

 

"Who can trust a cop who doesn't take money?"

(뇌물을 받지 않는 경찰을 누가 믿을 수 있겠어?)

 

영화 속 한 동료의 이런 기괴한 대사만큼이나 그런 부패한 집단이 생존하는 방식과 심리를 잘 설명해주는 것도 없다. 비리가 상식이 된 집단 내에서 청렴과 정의는 오히려 부조리이자 그들의 시선에선 악(惡)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을.

 

어느 오후, 브루클린의 한 골목에서 마약상 검거 작전 중 '서피코'(알 파치노 분)가 자신의 지원 요청이 일부 받아들여지지 않은데 대해 심히 당황한 채로, 뒤늦게 도착한 순찰 경관에 넋이 나간듯 벽에 기챈 채로 마주하고 있다.(상단) 1971년 그날, 브루클린의 한 마약상 아파트의 외벽 철제 비상 사다리를 홀로 오르며 잡입하고 있는 형사 '서피코'의 처절한 모습 스틸컷. 조직 내부의 이물(異物)이자 '위험한 이방인'이었던 그의 외롭고도 절박한 추격의 끝엔, 그 누구도 신뢰할 수 없는 차가운 철제 구조물 위, 동료들의 싸늘한 방관과 비극적인 총격만이 기다리고 있었다.(하단 좌측) 털모자를 눌러쓴 채로, 사건 현장의 문 틈 사이로 몸을 던진 '서피코'(알 파치노 분)가 동료들에게 지원을 요청하지만, 뒤에 선 이들은 끝내 움직이지 않았다. 실제 사건을 그대로 재현한 이 체인이 걸린 문틈 사이에 몸이 끼인 순간은, 부패한 조직이 정의로운 개인을 어떻게 저버리고 사지로 밀어 넣을 수 있는지를 가장 압축적이면서도 실감나게 보여주는 장면이다.(하단 우측)(이미지 출처: ​Image Courtesy of Paramount Pictures, Artists Entertainment Complex & Cinema 5 Distributing (보도·비평용 인용))
[영화 밖 숨은 1인치] ​영화상의 충격적인 총격 장면은 1971년 2월 3일 브루클린 윌리엄스버그(778 Driggs Ave.) 4층에서 벌어진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수염을 기르고 털모자를 쓴 채 잠입 수사에 나섰던 '세르피코'는 동료들의 방조 속에 마약상이 쏜 총탄에 얼굴을 맞고 쓰러졌다. 죽음의 문턱에서 기적적으로 회복한 그는 냅 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용기 있는 증언을 마쳤으며, 1972년 6월 15일 NYPD 명예훈장을 끝으로 경찰직을 내려놓고 스위스로 떠났다. 실제 '프랭크 서피코'는 "오늘날에도 그 장면을 보는 것이 매우 힘들 정도로 영화가 참혹한 사실을 그대로 재현했다"고 회고한 바 있다.

그럼에도 '서피코'는 동료들의 회유와 협박 속에서도 끝끝내 돈 봉투를 거부하건만, 그 대가는 참혹한 것이었다. 그는 순찰 도중 동료들의 방조 또는 고의적인 방관 속에서 얼굴에 총을 맞고 쓰러지고 마는데..

이러한 '서피코'의 고독은 단순한 물리적 고립이 아닌 것이었다. 국가가 부여한 신성한 권력이 자신을 죽음으로 밀어 넣을지도 모른다는 공포, 그리고 나 하나 바르게 산다고 해서 이 거대한 시스템을 바꿀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근원적 절망감과의 싸움인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침묵을 택하는 대신, 내부 고발자가 되어 온 세상에 그 민낯을 까발리는 길을 선택한다.

 

평소 덥수룩한 수염을 기르고 털모자를 눌러쓴 '서피코'만의 비관습적 용모는 뛰어난 잠입수사의 자산이었을진 모르지만, 보수적 경찰 조직 내에선 '경찰답지 않다'라는 편견과 조롱, 불신을 감수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그런 형사 '서피코'가 정복 경관들의 따가운 눈초리 사이를 지나고 있는 모습 스틸컷.(상단)
부당함에 격정적인 언성을 높이고 있는 형사 '서피코'(알 파치노)의 모습. 정의감으로 들끓는 그와 그릇된 시스템 안에 안주하려는 이들 사이의 온도차가 한 프레임 안에 담겼다.(하단)(이미지 출처: ​Image Courtesy of Paramount Pictures, Artists Entertainment Complex & Cinema 5 Distributing (보도·비평용 인용))
[영화 속 숨은 1인치] 거장 '시드니 루멧'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알 파치노'가 주연을 맡은 영화 <형사 서피코(Serpico), 1973>는 330만 달러의 제작비로 북미에서만 약 2,980만 달러의 흥행을 기록하며 비평과 상업성 모두를 잡은 명작으로 손꼽힌다. '알 파치노'는 내부 고발자의 고뇌와 절박함을 압도적인 연기로 풀어내 생애 첫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을 거머쥐었으며,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까지 올랐다.

그럼 여기서 잠깐. 합리화의 늑대, '알론조'와 외로운 파수꾼, '서피코'가 마주한 현실에서 이 두 영화를 관통하는 가장 소름 돋는 지점이 있다면 그것은 과연 뭘까.

그건 바로 '시스템의 묵인'이다. '알론조'의 악행이 가능했던 이유는 그의 뒤를 봐주는 고위 간부들과 사법 카르텔이 존재했기 때문. 그리고 '서피코'가 죽음의 문턱까지 가야 했던 이유 역시도 조직 전체가 비리를 수호하기 위해 카르텔을 형성해 왔기 때문이었다.

 

영화 <트레이닝 데이>의 '알론조'가 자신의 차량 운전석에서 시스템의 썩은 물에 물들이기 위해 신참 경관(에단 호크 분)을 회유하고 협박하며 차를 부패의 밀실로 사용했다면, <형사 서피코>의 운전석은 정반대의 공간으로 해석 될 수 있다.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인 조직의 감시 속에서 오직 이곳만이, '서피코'가 양심과 정직을 지키기 위해 오롯이 자신으로 남을 수 있었던 피난처(?)였을 수도. 운전석에 앉은 '알론조'가 마치 악마처럼 신참 경찰을 비리의 나락으로 끌어내리기 위해 밀어를 건넸다면, '서피코'의 운전석에선 오직 의인의 무거운 한숨만이 가득했던 것을. 조수석과의 대화는 회유가 아닌, 부패한 조직 내에서 자신의 존엄을 지키려 했던 한 남자의 외로운 호소뿐인 것이었다. 그 외의 영화 속 형사 '서피코'(알파치노 분)의 모습 스틸컷.(상, 하단)(이미지 출처: ​Image Courtesy of Paramount Pictures, Artists Entertainment Complex & Cinema 5 Distributing (보도·비평용 인용))
[영화 밖 숨은 1인치] '세르피코'는 수년간 조직 내부 경로를 통해 경찰 비리를 제보했으나 수뇌부는 이를 철저히 묵살했다. 이에 굴하지 않던 '세르피코'는 '뉴욕타임스'의 '데이비드 버넘' 기자와 1년에 걸친 밀착 취재 끝에 1970년 4월 25일, 자신의 실명을 내걸고 폭로 기사의 주역으로 나섰다. 이 특종은 뉴욕 사회에 거대한 파장을 일으켰고, 부패를 파헤치는 '냅 위원회(Knapp Commission)' 출범의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경찰 비리 뉴스들 역시 이 두 영화의 현실적 변주와 다름 아닌데 있어, 권력을 사유화한 자들은 언제나 '알론조'처럼 "조직을 위해서", 혹은 "어쩔 수 없는 현실적인 선택"이라며 스스로에게 늑대의 가면을 씌운다.

반면 부조리에 의문을 제기하는 내부의 상식적인 목소리들은 '서피코'처럼, 조직의 부적응자로 낙인찍히며 철저하게 고립되고 배제되어 버리는데,

 

경찰 내부 비리 폭로의 상징 그 자체가 된 영화 <형사 '서피코'>의 주요 장면 스틸컷. 이러한 알 파치노가 완성한 실제 인물 '프랭크 서피코'는, '미국영화연구소(AFI)'가 선정한 '100년 100인의 영웅' 40위에 오른 바 있다.(상, 하단)(이미지 출처: ​Image Courtesy of Paramount Pictures, Artists Entertainment Complex & Cinema 5 Distributing (보도·비평용 인용))​
​ [영화 밖 숨은 1인치] 1936년 4월 14일 생인 '프랭크 서피코'(본명 '프란체스코 빈센트 서피코')는 현재 90세의 나이로 뉴욕주 컬럼비아 카운티에 거주하고 있다. 시스템의 더러운 물에 물들지 않고 홀로 상식이 되려 했던 그의 삶은,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정직과 존엄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묵직하게 물어오고 있다.

영화 <트레이닝 데이>의 종장에서 나름의 제국(?)을 건설하려 했던 '알론조'가, 결국 자신이 그토록 무시했던 뒷골목의 평범한 시민들에게 외면당하고 러시아 마피아들의 총탄에 처참한 최후를 맞이한 것처럼,

 

그리고 이와는 반대로 영화 <서피코>의 실제 주인공 '프랭크 세르피코'가 동료들의 방조 속에 입은 총상 후유증을 끌어안고 부패 척결 청문회에 서야 했던 것에서부터, 증언을 마친 뒤 NYPD 최고 훈장을 받고 퇴직한 그가 부패한 조직에 대한 깊은 환멸을 뒤로한 채 쓸쓸히 유럽으로 떠난 것에서 처럼

 

악인의 파멸은 영화처럼 극적이지만, 의인의 투쟁 뒤에 남는 현실은 아주 차갑고도 쓰라린 것을.

 

 

부패의 그림자와 정직이라는 빛 속에서 우리는 과연 어떤 파수꾼을 전면에 세울 것인가? 이러한 물음 속에서 제작된 이번 칼럼의 마지막 일러스트는 권력의 그늘 속에서 시스템의 괴물이 되어버린 '알론조'의 유혹과 침묵을 거부한 채로 외롭게 빛을 밝혔던 '서피코'의 배지 모습을 담아 정의의 시대라는 신성하고도 무거운 저울 위로 어떠한 파수꾼의 무게에 힘을 실어줄 것인지, 그 선택은 이제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의 몫이 아닐 수 없다.(이미지 출처: [영화로운 세상읽기] 전용 아카이브)​(*본 이미지는 칼럼의 주제 의식 상징화를 위해 특별 제작된 일러스트입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현실의 뉴스를 보며 느끼는 깊은 갈증은 모두가 눈을 감고 귀를 막을 때, 자신의 안위를 걸고 "이것은 틀렸다!"라 말할 수 있는 그런 단 한 명의 '진짜 파수꾼'에 대한 갈증이 아닐는지.

법과 권력이라는 칼자루가 주어졌을 때, 그것을 쥐고 괴물이 되는 길을 선택한 '알론조'를 묵과할 것인가, 아님 '서피코'처럼 뼈를 깎는 고독을 감내하며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는 숭고한 행위를 진정으로 추켜세울 것인가.

영화를 렌즈 삼아 마주한 오늘의 세상은 우리에게 묻는다. 법이 제 기능을 잃고 흔들릴 때에, 우리는 과연 어떤 파수꾼의 얼굴을 끝까지 지지할 것인지. 영화 같은 현실이 매일같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지금, 이 두 편의 영화는 순수한 엔터테인먼트를 넘어 우리가 반드시 바라봐야 할 가장 정직한 거울이 아닐 수 없다. [시사캐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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