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만 '정류(精溜)'해 들여다보는 영화 한 편 간편 다루기
세상이라는 전쟁터에 홀로 내세워진 이들을 위한 위로 어린 찬사, 영화 '트로이(Troy)' 上
(시사캐스트, SISACAST=양태진 기자)
불이 꺼지고, 영화의 시작을 알리는 스크린 속 음영(陰影) 앞에서 숨을 죽일 때면, 비단 화면을 채우는 건 오프닝 크레딧 만이 아니다. 그곳에 비친 누군가, 기대 어린 눈망울의 관객 당신 또한 이야기에 뛰어들 출사표를 함께 던지고 있는 셈.
이내 주인공이 되어 거친 숨을 몰아쉬다가도, 어느새 한 발 물러선 제 3자가 되어 영화 속에 동참하고 있단 기분만으로 가슴 벅차오르는 당신. 헌데 이러한 전율은, 아득히 오래된 역사와 웅장한 신화를 다루는 경우라면 더욱, 그 참여와 공감의 의미와 함께 배가되기 마련인 것을.
수천 년의 시간을 뚫고 돌아온 고독한 이들의 혈투 — 영화 <트로이(Troy, 2004)>
여기, 그런 관점에서 수천 년의 세월을 건너 오늘날 우리에게 고전의 묵직함을, 바로 어제 따온 신선한 과실 마냥 생생함으로 던져준 영화가 있었으니, 웅장한 신화의 장막은 한꺼풀 걷어낸 채로, 과거 시간의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 내던져진 지극히도 인간적인 고뇌와 선택을 날것 그대로 포착해 낸 이 작품은
국가의 대의명분은 어디에서 나와 어떤 귀결점으로 치달을 수 있는지, 그리고 오로지 자아를 증명하기 위해 칼을 빼 든 자와 한 집단 내지는 가족의 일상을 지키기 위해 무거운 창과 방패를 쥐어 든 자의 극적 대비를 통해,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실존적 선택의 무게를 아주 강렬하게 환기시키고 있다.
지난 첫 번째 시간엔 우리가 왜 어두운 극장에 모여 거대한 스크린 빛을 응시할 필요가 있는지, 이에 영화라는 예술 매체가 '삶을 관통하는 렌즈로서 우리에게 전해주는 본질적 위안'에 대해 조망했다면, 이젠 본격적으로, 영화 한 편 마다의 해체에 나설 [영화 정류소]의 그 두 번째 정차역으로, '호메로스'의 대서사시 <일리아스>를 스크린 위에 웅장하게 복원해 낸 불멸의 서사극 <트로이(Troy, 2004)>에 멈춰 서 볼까 한다.
영화 <글래디에이터(Gladiator, 2000)>와 <킹덤 오브 헤븐(Kingdom Of Heaven, 2005)>을 빚어낸 '리들리 스콧(Ridley Scott)' 사단의 시각적 유산과 궤를 같이하는 이 대작은, <특전 유보트(The Boat, 1982)>로 인간 내면의 한계를 밀도 높게 조명했던 거장 '볼프강 페터젠(Wolfgang Petersen)' 감독이 메가폰을 잡으며 신화의 껍질을 과감히 벗겨낸 터,
원전 <일리아스>를 지배하던 올림포스 신들의 변덕과 개입이 스크린 밖으로 밀려난 결과, 숨 막히는 고독의 전장엔 오로지 칼과 방패, 그리고 선택의 고뇌만이 남는 것이었다. 이로써 영화는, 가장 순수한 인간들의 혈투를 스크린 위에 오롯이 되살려 낼 수 있었고,
이로는 부족했는지 훗날 <왕좌의 게임>을 집필하게 되는 '데이비드 베니오프(David Benioff)'의 날 선 각본이 더해지면서 영화는, 단순한 흥미 위주의 전쟁 블록버스터를 넘어 고대 영웅들의 실존적 비극이 살아 숨 쉬는, 아주 뜨겁고도 처절한 인간 대서사시로 완성될 수 있었다.
제목에서처럼 '트로이'라는 도시에서 일어난 거대한 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영화는, 지혜의 영웅 '오디세우스(숀 빈 분)'가 참전을 마친 후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겪어야 했던 10년의 방랑기, 즉 또 다른 불멸의 서사 <오디세이아(Odyssey)>의 전초전임에도, 이야기가 심연을 뚫고 들어가면 갈수록 수만 대군의 요란한 함성 대신, 흙먼지 속에서 마주한 두 남자의 숨소리에만 집중하는데,
이것이 바로 무적의 칼날을 휘두르는 '반신반인'의 고독한 전사 '아킬레우스(브래드 피트 분)'와, 조국과 가족이라는 굴레를 짊어진 트로이의 성실한 수호자 '헥토르(에릭 바나 분)'사이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의 대결이었던 것을.
그 연유에는 물론, '아킬레우스'가 가장 아끼는 사촌 동생 '파트로클로스'를(원전에서는 나이가 좀 더 많은 선배 격으로, 생사를 함께하는 가장 깊은 전우이자 둘도 없는 절친(혹은 연인 관계의 뉘앙스)으로도 묘사된다.) '헥토르'가 본의 아닌 상황에서 처단해 버린 데에 따른 처절한 상실감과 분노가 자리하고 있었다. 어찌됐든 두 인물의 이 숙명적 충돌이야말로 영화를 관통하고 있는 가장 큰 축을 이루는 것.
여기에 오만과 탐욕으로 가득 찬 미케네의 왕 '아가멤논(브라이언 콕스 분)', 지혜와 회의(懷疑) 사이를 줄타기하는 앞서 언급했던 '오디세우스'와 비극의 불씨를 지핀 '파리스(올랜도 블룸 분)'까지. 스크린을 채우는 각각의 인물들은 저마다 뚜렷한 욕망의 깃발 하나씩을 곳곳에 꽂아 둔 채로, 이 고전 대서사시의 영화적 흥미와 긴장감을 드높이는데 일조하고 있다.
영화의 서사는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네'와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의 금지된 사랑이라는 한 줄기 불씨에서 점화된다. 평화 협정을 맺고 돌아가던 길, 사랑에 눈이 멀어 '헬레네'를 트로이로 무작정 데려와 버린 '파리스'의 무모한 선택이, 지중해 전체를 거대한 전화(戰火) 속으로 몰아 넣고 만 것이다.
이에 자신의 동생(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의 치욕을 명분 삼았건만, 실상은 에게해의 패권을 노리던 미케네의 탐욕스러운 왕 '아가멤논'은, 그리스 전역의 군주들을 규합해 바다를 새카맣게 뒤덮는 천 척의 함대를 이끌고 난공불락의 요새, 트로이로 진격한다.
신화적 과장 대신 역사적 현실감을 택한 스크린 위에서, 트로이의 해변을 붉게 물들이는 상륙 작전과 거대한 성벽 아래에서 펼쳐지는 백병전은, 보는 이로 하여금 전장 한가운데로 끌어당기기에 충분한 것. 하지만 그 거대한 충돌 속에서도 영화는 단순한 시각적 스펙터클에만 함몰되지 않은 채, 신념과 욕망이 뒤엉킨 인물들의 심리적 전선(戰線)까지도 치밀하게 교차시키고 있다.
그럼 트로이는, 파도처럼 쉼 없이 밀려드는 압도적인 병력과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전쟁 귀신들의 무자비한 공세에 과연 성벽을 지켜낼 수 있을지. 그 불꽃 튀는 칼끝 너머의 진정한 불멸을 거머쥘 자는 과연 누구 편일지, 이 비극적 서사의 본령(本領)은 영화 속에서 확인하길 바란다. [시사캐스트]
(이외 더 본격적인 이야기는 2편에서 계속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