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캐스트, SISACAST= 박이슬 문화평론가)
병원에서 가장 자주 듣게 되는 질문 중 하나는 아마 “보호자분은요?”일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너무 자연스러운 질문이다. 배우자나 부모, 자녀에게 연락하면 된다. 하지만 혼자 사는 사람에게는 잠시 대답이 늦어지는 질문일 수 있다. 가족이 멀리 살 수도 있고, 연락할 가족은 있어도 실제로 곁에 와줄 수 없는 경우도 있다. 부모는 고령이고, 형제자매는 각자의 삶이 있으며, 친구에게 부탁하기에는 왠지 미안한 순간도 있다.
특히 갑작스럽게 수술이나 검사를 받아야 할 때는 문제가 조금 더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병원에 가는 것부터 검사 후 귀가, 약을 받아오는 일, 며칠간의 회복까지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할 수 있다. 가족과 함께 사는 사람에게는 자연스럽게 넘어갈 수 있는 과정이 1인가구에게는 하나하나 준비해야 할 일이 된다.
혼자 산다는 것은 어쩌면 이런 작은 순간들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래서 1인가구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조금 다른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는 흔히 1인가구 증가를 걱정해야 할 사회현상처럼 이야기한다. 뉴스에서는 고독사와 사회적 고립이 함께 언급되고, 정책에서도 외로운 1인가구를 지원해야 한다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물론 그런 문제는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혼자 산다는 사실 자체가 곧 외롭고 취약하다는 뜻은 아니다. 혼자 살면서도 친구와 이웃, 직장 동료와 충분한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사람이 많다. 반대로 가족과 함께 살더라도 대화가 끊기고 관계가 단절된 채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혼자 사는 것은 생활의 형태이고, 고립은 관계의 상태다. 두 가지를 같은 것으로 바라보는 순간 현실을 놓치기 쉽다.
오히려 눈여겨봐야 할 것은 우리 사회의 제도와 관행이다. 우리의 의료와 복지, 돌봄 체계에는 여전히 가족이 곁에 있을 것이라는 가정이 깊이 들어가 있다.
아프면 가족이 병원에 데려가고, 수술하면 보호자가 기다리며, 퇴원하면 누군가가 집까지 데려다준다. 갑자기 생활이 어려워지면 가족이 먼저 살피고, 위급한 상황이 생기면 가족에게 연락한다. 오랫동안 우리는 이런 일을 가족의 당연한 역할로 생각해왔다.
그 덕분에 우리 사회는 돌봄에 들어가는 상당한 비용과 책임을 가족 내부에 맡겨둘 수 있었다. 부모가 아프면 자녀가 돌보고, 자녀에게 문제가 생기면 부모가 나서는 방식이었다. 겉으로는 특별한 제도가 없어도 가족이 사회안전망의 빈틈을 메워왔다.
그러나 이 전제는 점점 현실과 맞지 않게 되고 있다.
청년들은 취업과 학업을 위해 고향을 떠나 다른 지역에서 생활한다. 결혼을 늦추거나 하지 않는 사람도 많아졌다. 중년에는 이혼이나 별거로 혼자 살게 되기도 하고, 노년에는 배우자의 사별 이후 혼자 남기도 한다. 가족이 존재하더라도 서로 다른 지역에서 살아 실제적인 돌봄을 주고받기 어려운 경우도 흔하다.
결국 가족이 있다는 사실과 나를 돌봐줄 사람이 있다는 것은 더 이상 같은 의미가 아니다.
이 변화는 1인가구만의 문제도 아니다. 자녀가 해외나 다른 지역에 사는 노부부, 맞벌이 부부, 가족관계가 단절된 사람도 비슷한 상황을 경험한다. 그래서 1인가구의 증가는 어쩌면 우리 사회가 오랫동안 가족에게 맡겨두었던 역할을 다시 들여다보게 만드는 계기인지도 모른다.
최근 여러 지역에서 병원동행이나 이사동행 같은 서비스가 등장한 것도 이런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겉으로 보면 단순히 혼자 병원에 가기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는 서비스처럼 보이지만, 조금 더 넓게 보면 의미가 다르다.
그동안 가족이 담당하던 일을 사회가 조금씩 공적인 서비스로 옮겨오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 변화는 앞으로 더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가족이 없거나 가족의 도움을 받기 어려운 사람이 의료와 돌봄에서 불리해지지 않으려면, 가족이 하던 역할 가운데 어떤 부분까지 사회가 나누어 맡을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그렇다고 모든 1인가구를 복지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 역시 바람직하지 않다.
1인가구라는 이름 아래에는 너무나 다른 사람들이 함께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취업을 위해 독립한 20대 청년, 안정적인 직장을 가진 40대 비혼 직장인, 이혼 후 혼자 생활하는 중년, 배우자를 떠나보낸 70대 노인의 삶을 하나의 정책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필요한 지원도 다르다.
청년에게는 높은 주거비와 불안정한 일자리가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고, 중장년에게는 사회적 관계 단절과 갑작스러운 질병이 위험요인이 될 수 있다. 고령 1인가구에게는 건강과 이동, 일상 돌봄의 문제가 훨씬 중요하다. 소득이 충분하고 관계망이 탄탄한 사람에게는 별도의 지원이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앞으로의 1인가구 정책은 혼자 사는 사람을 지원한다는 단순한 접근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갈 필요가 있다. 가구원 수만으로 사람을 분류하기보다 그 사람이 실제로 어떤 돌봄 자원을 가지고 있는지, 위기 상황에서 도움을 요청할 사람이 있는지, 경제적으로 안정되어 있는지, 지역사회와 어느 정도 연결되어 있는지를 세밀하게 살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혼자 사는 삶을 결핍의 상태로 바라보지 않는 것이다.
혼자 살기로 선택한 사람에게 공동체 참여를 강요하거나, 결혼과 가족 형성을 마치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가는 해법처럼 이야기하는 것은 시대의 변화를 제대로 읽지 못하는 접근일 수 있다.
사람들은 이미 다양한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 어떤 사람은 결혼하고 자녀를 키우며 살고, 어떤 사람은 혼자 살며 친구나 동료와 긴밀한 관계를 맺는다. 가족의 형태가 다르다고 해서 삶의 가치까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사회가 해야 할 일은 특정한 가족 형태를 정상으로 정해놓고 사람들을 그 틀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어떤 형태로 살아가든 기본적인 안전과 돌봄을 누릴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드는 일이다.
1인가구 시대의 핵심은 결국 혼자 살아도 괜찮은 사회가 무엇인지 고민하는 데 있다.
아플 때 가족이 없어도 치료받는 데 어려움이 없고, 위급할 때 도움을 요청할 수 있으며, 나이가 들어도 생활의 기본적인 돌봄이 유지되는 사회. 혼자 산다는 이유만으로 불필요한 불안이나 불이익을 감수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다.
1인가구가 많아졌다는 사실만을 놓고 사회의 위기를 이야기하기는 쉽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변화한 삶을 받아들일 준비를 우리 사회가 얼마나 해왔는지를 돌아보는 일이다. [시사캐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