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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포커스] 윤석열 당선인, ‘늦깎이 검사에서 0선 대통령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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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포커스] 윤석열 당선인, ‘늦깎이 검사에서 0선 대통령으로’
  • 김지영 기자
  • 승인 2022.03.12 15: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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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정부 아닌 국민의힘 정부…야당과도 협치할 것”

(시사캐스트, SISACAST= 김지영 기자)

 

20대 대통령 윤석열 당선인이 지난해 6월 정치에 입문한 지 9개월 만에 대권을 거머쥐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사법고시 패스까지 9년이나 걸린 늦깎이 검사였다. 정의를 위해서라면 살아있는 권력에 칼을 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권력에 밉보여 평검사로 좌천도 됐다.

검찰총장으로 임명돼 검찰개혁을 이끌고자 했지만 정권과 사사건건 충돌하다 사퇴했다. 그렇게 차기 대권주자로 급부상한 그는 제1야당 대선후보로 선출됐다. 평범하게 검사 인생을 살아오던 그가 대중에게 각인되는 사건은 이 세가지로 나뉜다.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어록과 ‘박근혜 특검’으로 대중들에게 인식되기 시작했다.

슬로건 ‘국민이 키운 윤석열, 내일을 바꾸는 대통령’

지난 10일 새벽 2시 KBS는 개표율 88.6%인 상황에서 윤 당선인이 1429만6453표(47.8%)를 득표하자 당선 유력을 선언했다. 검사에서 곧바로 청와대에 입성하는 한국 정치사에 전무후무한 사례를 남기는 순간이었다. 윤 당선인은 정치 입문 선언 130일 만인 지난해 11월 제1야당의 대선 후보 자리에 올랐다. ‘문재인 정부 검찰총장’에서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 완전히 위치가 바뀌는 순간이었다.

지난해 7월 30일 국민의힘에 전격 입당한 윤 당선인은 보수정당 터줏대감인 홍준표 의원과 유승민 전 의원, 원희룡 전 제주지사 등과 수차례 토론회 등을 통해 경쟁을 벌였다. 제1야당의 최종 후보가 된 후에는 집권여당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 대선후보와 지지율 선두 자리를 주고 받으며 치열한 대치 구도를 형성했다. ‘국민이 키운 윤석열, 내일을 바꾸는 대통령’이라는 슬로건으로, 정치신인으로서의 감사함과 미래를 바꾸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권력비리 사건 수사하며 특수통 ‘칼잡이’로 두각 나타내

윤 당선인의 정치적 자산은 문재인 정부와의 대립으로 쌓아온 투사 이미지가 있다. 여기에 국민의힘 지지자들의 정권 교체 열망이 보태지며 정치 신인을 유력 대권 주자로 끌어올렸다. 1960년 서울 태생인 윤 후보는 서울대 법대에 진학했다. 9수 끝에 1991년 사법시험에 합격해 1994년 대구지검에서 검사 생활을 시작했다. 평범한 검사였던 윤 당선인은 노무현 정부 들어 대형 권력비리 사건을 수사하며 특수통 ‘칼잡이’로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특수부 검사인 만큼 대형 권력에 칼을 들이대면서 강골 검사로 능력을 인정받았다. 2003년 불법 대선자금으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와 강금원 창신섬유 대표 등을 구속수사했고, 2006년에는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등을 비자금 사건으로 수사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 BBK특검에도 참여했으며, 박근혜 정부에서는 국정원 여론조작 사건을 수사했다.

정치입문 4개월 만에 제1야당 대선후보로 선출

윤 당선인의 인생이 바뀌게 첫 변곡점은 지난 2013년 국정원 여론조작 사건 때다. 국정감사장에서 “조직은 사랑하고, 사람에게는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로 대쪽같은 검사로 대중에 각인시켰다. 이후 좌천되며 한직을 전전하던 윤 당선인은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을 탄핵으로 이끈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특검에 합류하며 부활했고, 이듬해 출범한 문재인 정부에서 서울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으로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와 윤 당선인은 2019년 8월 조국 법무부 장관이 임명되고, 검찰이 조 전 장관 일가를 수사를 시작한 기점에서 갈라서게 된다. 윤 당선인의 인생의 두 번째 변곡점이라 할 수 있다. 윤 당선인은 조 전 장관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가 진행되던 중 부인 정경심 교수를 딸 표창장 위조 혐의로 기소하며 수사를 강행했고,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는 ‘추윤갈등’이라고 표현될 정도로 강하게 대립했다.

이 과정에서 윤 당선인은 자연스럽게 야권 유력 대선주자급으로 성장해 있었고, 2021년 3월 윤 당선인은 총장직을 던졌다. 사퇴 후 3개월 정도 재정비의 시간을 가진 윤석열은 지난해 6월29일 윤봉길기념관에서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공정과 상식을 무너뜨리고 자유와 법치를 부정하는 세력이 더 이상 집권을 연장해 국민에게 고통을 주지 않도록 정권을 교체하는 데 헌신하고 앞장서라는 뜻이었다”고 출사표를 던졌다. 검찰총장에서 물러난 후 117일만으로 사실상 대권 도전 선언이었다. 이후 같은 해 7월30일 국민의힘에 전격 입당했다. 

선대위 구성부터 난항…김종인 전 위원장과 결별, 선대위를 선대본부로 재편

후보 선출 이후 과정도 난항이었다. 작년 초부터 그를 물밑 지원했던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총괄선대위원장으로 영입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잡음이 불거졌고, 선대위 구성이 차일피일 밀렸다. 같이 경쟁했던 당내 주자들의 지지도 쉽게 얻어내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준석 국민의힘 당대표와의 갈등이 불거졌다.

이른바 윤핵관(윤석열 측 핵심 관계자)으로 불리는 윤 당선인 주변 인물들과 이 대표와의 갈등은 이 대표의 선대위 이탈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낳았고, 작년 12월 초 간신히 정리되는 듯했던 갈등 상황은 이후 한 번 더 불거지면서 이때 윤 당선인의 지지율을 전에 없는 수준으로 급락시켰다.

2021년 초 설상가상으로 김종인 당시 총괄선대위원장의 선대위 해체 선언이 윤 당선인과의 상의 없이 있었고, 윤 당선인에 대한 불신으로 지지율은 더 떨어졌다. 그러나 김 전 위원장과 결별하고, 선대위를 선대본부로 재편하며, 이 대표와도 완전히 갈등을 해소하면서 윤 당선인은 자신감을 얻었다. 
 
‘정권교체’ 위해 안철수와 후보 단일화…사상 첫 검찰출신 대통령 탄생

그는 본격 선거유세 활동을 치르면서 당내 경선후보들과의 원팀을 이뤄내는데 애썼다. 처음은 원희룡 전 제주지사, 이후에 홍준표 의원, 마지막으로 유승민 전 의원이 차례로 선대본에 합류했다. 특히 원 전 지사는 선대본 정책본부장을 맡아 원팀을 중심축을 잡았다. 홍 의원과 유 전 의원은 상임고문직을 맡는 모양새로 원팀을 구축했다. 원팀을 이룬 윤석열은 이번 대선의 최대 변수로 꼽혀온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의 단일화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 대선을 일주일 앞둔 지난 3일 드디어 결실을 봤다.

윤석열과 안 대표는 이날 함께 서울 여의도 국회 기자회견장에서 야권 후보 단일화 공동기자회견을 열었고, 가치 연대를 목표로 야권 단일화를 한 뒤 대선 후 합당하기로 최종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후 각종 유세 현장에서 윤석열은 안 대표와 함께 연단에 서 ‘정권교체’를 시민들에게 약속했다. 윤석열이 걸어온 길은 결국 민심을 움직였고 그는 1987년 헌법 체제 이후 최초의 국회 경험 없는 ‘0선’ 첫 검찰출신 대통령이다. [시사캐스트] [사진=yoonlov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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